‘비디’(biddy)는 성가시게 구는 노파를 비하하는 용어다. 이를 차용해 심리 스릴러 또는 호러의 한 서브장르로 발전한 ‘사이코-비디’(Psycho-Biddy) 영화에서는 공통적인 패턴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외딴 지역의 고립된 저택에 노파가 외롭게 살고 있으며 그는 그곳을 방문한 젊은 여성을 교묘히 학대하거나 위협을 가한다. 그곳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음산한 고딕 양식의 저택일 수도 있으며, 노파는 종종 화려하거나 불우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노파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본색을 드러내 주인공을 괴롭히며, 마지막 장면에서는 뒤틀린 결말을 맞이하기도 한다. ‘사이코-비디’ 영화는 1960년대 영화 <Who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를 원조로 하여 1970년대까지 우후죽순 제작되었는데, 자칫 노인에 대한 차별적 편견(Ageism)을 유발하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사이코-비디 영화로 추천되는 대표 영화 여섯 편을 알아보았다.

 

<다락방의 꽃들>(Flowers in the Attic, 1987)

버지니아 C. 앤드루스의 고딕 베스트셀러 소설 <Flowers in the Attic>(다락방의 꽃들, 1979)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최근에 라이프타임(Lifetime) 방송사가 판권을 확보하여 동명의 영화(2014)와 미니시리즈(2022)로 리메이크한 바 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가족이 외가의 대저택에 들어간 후 4남매가 다락방에 갇혀 지내면서, 대저택의 안주인인 외할머니 ‘Olivia’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내용이다. 영화 제작 당시 원작자의 입김이 강하여 웨스 크레이븐에서 제프리 블룸으로 감독 교체를 겪었으며, 근친상간의 요소를 얼마나 표현할 것인지 논란이 컸다. 매사추세츠의 대저택 캐슬 힐(Castle Hill)에서 촬영되었으며, 오래된 고딕 저택의 음습한 분위기를 잘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와 상업적인 흥행이 만족스럽지 않아, 원작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 <Petals on the Wind> 제작은 취소되고 말았다.

영화 <Flowers in the Attic>(1987) 주요 장면
라이프타임 TV영화 <Flowers in the Attic>(2014) 예고편

 

<노트 온 스캔들>(Notes on a Scandal, 2006)

이 영화의 사이코-비디는 영국 공립학교의 나이 많은 역사 교사 ‘바바라’(주디 덴치)다. 바바라는 평생 고독하고 외로운 독신으로 지내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매력적인 신임 미술교사 ‘쉬바’(케이트 블랑쳇)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다가 그가 어린 학생과 불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에게 집착한다. 조 헬러(Zoe Heller)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했으며, 박스오피스에서 5,0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 성공작이다. 로튼토마토 87%의 높은 평가를 받고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특히 주디 덴치와 케이트 블랑쳇의 불꽃 튀는 연기에 찬사가 집중되었다.

영화 <Notes on a Scandal> 예고편

 

<더 비지트>(The Visit, 2015)

마지막 반전으로 유명한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주특기를 살린 영화로, 5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1억 달러 가깝게 벌어들여 놀라운 흥행을 기록하였다. 모친이 남자친구와 크루즈 여행을 떠나게 되자 남매는 난생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을 방문하여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게 되는데, 집안에 설치한 카메라를 통하여 야간에 벌어지는 조부모의 이상 행동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다. <식스 센스>(1999)로 할리우드의 흥행 감독으로 떠오른 샤말란 감독이 <라스트 에어벤더>(2010)과 <애프터 어스>(2013)의 흥행 참패 후 더 이상 투자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집을 담보로 제작비를 빌린 후 극적으로 흥행에 성공하여 재기한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 <The Visit> 예고편

 

<마담 싸이코>(Greta, 2018)

원래 영화 제목은 딸을 잃고 뉴욕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상심리의 주인공 이름인 <Greta>였는데, 국내에 들어와 영화의 스토리에 딱 맞아떨어지지만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교체되었다. 차갑고 부도덕한 인상과 그에 맞는 연기로 정평이 난 프랑스 명배우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가 뉴욕의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려 젊은 여성을 유인하여 병적으로 스토킹하는 섬뜩한 엄마상을 연기하였고, 그의 미끼를 물고 피해를 당하는 여성 역을 클로에 모레츠가 연기하였다. 로튼토마토 60%에 박스오피스 1,800만 달러의 다소 아쉬운 성적을 올렸으며, 국내 개봉 당시 관객수는 4만 2,000명에 그쳤다.

영화 <마담 싸이코> 예고편

 

<Last Night in SOHO>(2021)

박찬욱 감독이 찬사를 보낸 판타지 공포 스릴러로, 화려한 영상미로 유명한 에드가 라이트(Edgar Wright) 감독의 작품이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의 학교에 입학한 학생 ‘엘리’가 밤마다 1960년대 화려한 소호 거리의 환영을 보면서 그 당시에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다. 안야 테일러 조이(Anya Taylor-Joy)가 환영 속에서 연예계 성공을 꿈꾸는 매력적인 여성 ‘샌디’를 연기했고, 런던의 하숙집 여주인 콜린스 부인이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제와 평가 사이트에서 괜찮은 평점을 받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개봉 날짜가 여러 차례 연기되면서 피해를 본 대표적인 영화로 남았다.

영화 <Last Night in SOHO> 예고편

 

<X>(2023)

티 웨스트 감독의 슬래셔 3부작 ‘X-Trilogy’의 첫 영화 <X>에는 노부부가 살고 있는 텍사스의 한적한 농가 주택에 다섯 명의 도시인들이 포르노 영화를 찍으러 찾아오며 학살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의 기괴하고 폭력적인 노파의 등장이나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과거에 대한 허무한 동경의 요소가 사이코-비디 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100만 달러 저예산의 B급 슬래셔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두 명의 기이한 캐릭터를 모두 연기한 미아 고스(Mia Goth)에 대한 찬사와 함께 박스오피스 수입 1,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프리퀄 <Pearl>(2023), 시퀄 <MaXXXine>(2024)의 3부작으로 이어졌다.

영화 <X>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