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제임스 클라벨(James Clavell)의 베스트셀러 <쇼군>(1975)이 40여 년 만에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채널 FX와 훌루(Hulu)에서 첫 선을 보인 2회 분량의 에피소드는 화려하고 웅장한 비주얼의 장편 서사시 면모를 자랑하며 로튼토마토 99%, 메타크리틱 84점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지는 후속 8편은 매주 한 편씩 4월 말까지 방영할 예정이며, 전 세계로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서비스될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 방영된 미니시리즈에서 리차드 체임벌린(Richard Chamberlain), 이번 드라마에서 코스모 자비스(Cosmo Jarvis)가 배역을 맡은, 최초의 푸른 눈의 사무라이 이야기는 실존했던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소설에서는 ‘존 블랙손’(John Blackthorne), 일본에서는 ‘안진 미우라’(Anjin Miura)로 불렀던 그의 본명은 윌리엄 아담스(William Adams)였는데, 그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와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사무라이 계급에 오를 수 있었는지 알아보았다.

리메이크 드라마 <쇼군>(2024) 예고편

 

일본에 표류한 영국 항해사

그는 1564년 영국의 켄트지방에서 태어나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읜 후 13세 때부터 조선업자의 제자가 되어 선박 기술을 배웠고, 영국 군대에 입대하여 아르마다 해전에 참전한 후 제대하여 항해사가 되었다. 그러다 네덜란드 무역 선단의 항해사로 채용되어 동생과 함께 극동 지역으로 출항한다. 출항 때는 각종 무역상품을 실은 다섯 척의 배로 떠났으나 한 척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도중에 스페인에 나포되거나 침몰하여, 그가 탔던 리프데호(de Liefde)만 일본의 큐슈 동북부 지방에 표류하게 된다. 출항할 때 다섯 척의 배에 110명의 선원으로 출항했지만, 2년에 걸친 항해 도중 풍토병에 감염되거나 원주민의 습격 등으로 사망하여 일본에 도착한 인원은 단 24명이었다. 그의 동생 토마스도 원주민에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가 일본에 도착했던 때가 1600년 4월 19일이니,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2년이 지난 후였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The Real Story Behind Shogun TV Show: William Adams>

 

최초의 푸른 눈의 사무라이

서양에서 온 생존자들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사후 일본의 새로운 실권자로 올라선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였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이묘(영주) 중 한 명이었다가, 유명한 세키하가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실권을 장악하고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된 인물이었다. 유럽의 상황이나 세계 무역항로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쇼군은 처음 만난 영국인과 수차례 접견하면서 신뢰를 쌓게 되었고, 그들을 잘 대접하면서 그들이 가져온 무기나 기하학, 수학 등에 관한 지식을 전수하게 하였다. 쇼군은 선박에도 관심이 많아 조선 기술을 보유한 윌리엄 아담스를 중용하였고, 그로 하여금 일본 최초로 서양식 조선소를 짓고 80톤 급의 배와 120톤 급의 배를 만들게 하였다. 이를 통하여 일본은 조선업 분야나 서양식 무기 등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윌리엄 아담스는 서양인 최초로 영지를 제공받고 칼을 차고 다니는 사무라이 계급이 되었다.

드라마 <쇼군>(1980)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윌리엄 아담스의 접견 장면

 

일본에 뼈를 묻은 안진 미우라

그는 영지가 있는 미우라 지방의 이름을 따서 ‘미우라 안진’(三浦按針)이라는 일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미우라는 영국에 두고 온 아내와 1남 1녀를 만나기 위해 귀국을 원했지만, 쇼군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막부에 물건을 납품하던 상인의 딸과 결혼하여 1남 1녀의 가정을 가지게 되었고, 막부에서 외교 고문으로 편안하게 지내면서 일본에서의 체류는 20여 년에 이르렀다. 쇼군 말년에 가까스로 귀국 허가를 받았지만 미우라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무역대사로 수차례 동남아 지역을 다녀온 후 병을 얻어 1620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미우라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재산은 50대50으로 본국의 가족과 일본의 가족에게 균일하게 상속되었다. 미우라는 생전에 장문의 편지를 통하여 영국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했으며, 그가 세세하게 묘사한 일본 생활을 통해 중세 일본의 모습이 고스란히 서양에 전해질 수 있었다. 현재 일본 곳곳에 미우라를 기리는 사적이 남아있으며, 그가 편지에 남긴 내용은 수세기가 지난 후 소설 <쇼군>의 소재가 되었다.

<William Adams: Miura Anjin land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