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일요일인 3월 1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해는 2020년에 마련된 다양성 및 포용성 기준이 적용되는 첫 해가 됨에 따라, 백인 중심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아카데미영화제에 변화가 일어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바벤하이머’(Barbenheimer)라는 신조어를 낳은 지난해 영화 판도를 증명하듯, 두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총 21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무엇 하나 쉽게 점치기 어렵다. 언론에서는 올해 오스카의 향방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다섯 가지를 꼽아 보았다. 우리나라는 시차에 따라 월요일인 3월 11일 오전 8시에 열리게 된다. 

 

대세 <오펜하이머>의 수상 횟수

올해 박스오피스에서 9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킨 최고의 문제작 답게 아카데미 영화제의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올해 1월에 열린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8개 부문, 골든글러브에서는 5개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13개 부문 중 얼마나 많은 작품이 시상대에 오를 지 알 수 없다. 참고로 역대 최다 오스카 수상작은 3개 영화가 동률로, <벤허>(1959), <타이타닉>(1997),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이 각각 11개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오펜하이머>

 

<바비>의 여우조연상 수상 여부

무려 14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2023년 최고의 흥행작이 된 영화 <바비>지만, 예상을 뒤엎고 마고 로비(Margot Robbie)는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앞서 열린 크리틱스 초이스나 골든글러브에서도 배우들이 줄줄이 시상무대에 오르지 못해 뒷말이 무성했다. 이제 아카데미 무대에서 여우주연상 대신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아메리카 페레라(America Ferrera)의 어깨가 무겁다. 드라마 <어글리 베티>(2006~2010)의 주인공 ‘베티 수아레즈’ 역 이후에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던 그가 오스카상을 거머쥘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SeeHer Awards를 수상한 아메리카 페레라

 

노장 감독들의 분투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올해 81세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른 최고령 감독이다. 그는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에 열 번째 후보에 올라, 현재 살아있는 감독 중에는 최고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은 1981년에 사망한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감독으로, 모두 열두 차례나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로 영화음악상 후보에 오른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음악감독은 현재 81세로 이 부문 최고령 후보자인데, 그 역시 54번째 후보에 오른 쟁쟁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의 ‘American Spy’

 

여성 감독의 약진

올해는 3명의 여성 감독들이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 <바비>로 각색상 후보에 오른 그레타 거윅 감독,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쥐스틴 트리에(Justine Triet) 감독, 그리고 영화 <Past Lives>로 각본상 후보에 오른 셀린 송(Celine Song) 감독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최고 흥행작의 감독이지만 주요 시상식에서 번번이 수상하지 못했고,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각색상 후보에는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의 트리에 감독은 본국에서 열린 세자르상 6개 부문을 석권하여 기대를 모으고 있고, 한국계인 셀린 송 감독은 자전적 추억을 바탕으로 쓴 감독 데뷔작으로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다른 부문에 이름을 올렸기에 세 사람이 모두 수상할 가능성도 있다.

영화 <Past Lives> 예고편

 

미국 원주민 배우의 최초 수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릴리 글래드스톤(Lily Gladstone)은 몬타나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 원주민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머니는 영국 수상을 낳은 백인 가계의 혼혈이다. 졸업 후 배우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영화 <The Unknown County>(2022)에서 첫 주연을 맡아 고담상을 받은 기대주였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에서 열연하여 골든글러브에서 미국 원주민으로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이미 받았고, 오스카 수상 가능성 역시 높아 보인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원주민 언어와 영어로 수상 소감을 밝히는 릴리 글래드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