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소피아 베르가라(왼쪽)와 그가 연기한 그리셀다 블랑코(오른쪽)

오래 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실존했던 마약 카르텔 보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실화를 다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나르코스>(2015~)에 이어, 8년 만에 같은 지역 출신의 실존 여성 보스를 다룬 드라마가 넷플릭스 인기 차트의 톱을 달리고 있다. 올해 1월 말에 소개된 6부작 미니시리즈 <그리셀다>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조직 간의 다툼으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마이애미 마약 전쟁’(Miami Drug War)의 배후 중 하나로 악명을 떨쳤던 실존 인물 그리셀다 블랑코(Griselda Blanco)를 주인공으로 다뤘다. <나르코스> 제작팀의 일부가 제작에 참여하여 로튼토마토 87%의 호평을 받았고, 넷플릭스에 올라온 지 3일 만에 89개국에서 1위에 오르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그리셀다 블랑코의 유족은 미니시리즈가 사실을 왜곡하였다며 제작자와 주연 배우 소피아 베르가라(Sofia Vergara)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 미니시리즈의 주요 내용에서 어디까지 진실인지 살펴보았다.

미니시리즈 <그리셀다>(2024) 예고편

 

그는 실제 퀸핀(Queenpin)이었나?

맞다. 그리셀다 블랑코는 1976년 미국 당국이 12명의 마약 밀수입 사범을 기소할 때 자신의 남편 알베로 브라보(Albero Bravo), 그리고 남편의 형 카를로스 브라보(Carlos Bravo)와 함께 처음 이름이 드러났다. 모국 콜롬비아로 달아났던 그가 다시 미국 마이애미로 돌아와 또 다시 메데인 카르텔의 코카인을 미국으로 밀반입하는 사업을 벌이는 시점부터 미니시리즈가 시작된다. 이 시점에 마이애미에서 대규모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그는 약 250건 살인의 배후로 의심을 받았으며, 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월 8,000만 달러(약 1,0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985년에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체포되어 두 번에 걸쳐 마약 밀반입과 3건의 살인사건으로 기소되었고 양형 거래 끝에 20년형이 선고되었다. 2004년에 모국으로 추방되어 고향 메데인에 거주하다가, 2012년에 가족과 함께 정육점에서 나오는 길에 모터사이클 히트맨의 총격으로 69세에 사망하였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그를 두려워했다”라는 미니시리즈 첫 장면에 나오는 자막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A&E 다큐멘터리 <The Cocaine Queenpin: Griselda Blanco>

 

그는 남편을 살해하였나?

맞다. 세 명의 남편 모두 총격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세 명 모두 블랑코가 사건의 배후에 있을 것으로 의심을 받았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아 기소되지 않았다. 그가 13세의 어린 나이에 처음 만난 첫 남편 카를로스 트루히요(Carlos Trujillo)와는 아들 셋을 두었고, 20대의 나이에 이혼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미니시리즈의 앞부분에 잠깐 등장하는 두 번째 남편 ‘알베르토’와는 함께 마약 사업을 일구었으며, 사업 자금과 관련된 분쟁이 총격전으로 비화했으며, 직접 남편과 경호원 모두 살해하였다. 쿠바 배우 알베르토 게라(Alberto Guerra)가 연기한 세 번째 남편 다리오(Dario Sepulveda)는 두 번째 남편과 그가 고용한 히트맨 중 한 명이었으며, 다리오와 결별 후 아들 마이클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1983년에 경찰 복장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블랑코는 자신의 개입을 적극 부인하였으나, 경찰은 5만 달러에 히트맨을 고용한 것으로 보았다. 세명의 남편 모두 불의의 총격을 받고 일찍 사망하여 그에게 ‘블랙 위도우’(Black Widow)라는 별명이 주어졌다.

 

마약을 여성의 속옷에 숨겼나?

블랑코가 마약의 미국 판로를 개척하던 1970년대는 항공 보안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아 공항에 스캐너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콜롬비아의 직업 여성들을 다수 고용하여 브라와 거들 등의 속옷에 마약을 은밀하게 밀봉하여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콜롬비아의 인기 가수 캐롤 지(Karol G)가 연기한 ‘칼라’는 당시 밀반입에 개입했던 다수의 여성을 대변하여 가공한 캐릭터로,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콜롬비아의 직물 공장을 인수하여 운영하면서 마약을 숨길 수 있는 특수한 직물을 만들어 마약 밀반입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미국 당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항공 보안이 갈수록 엄해지자, 선박을 통하여 밀수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직접 뉴욕 항으로 반입한 적도 있다.

뉴스 <This Is How Drug Lord Griselda Blanco Was Really Killed>

 

마이애미의 첫 여성 경찰

그리셀다를 추적한 마이애미 경찰 준 호킨스와 앨 싱글턴 부부

미니시리즈에서 블랑코를 추적하는 마이애미의 여성 경찰 준 호킨스(June Hawkins)는 당시 그를 추적했던 실존 인물이며, 지금은 73세의 나이로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호킨스는 경찰학교 졸업 후 마이애미의 데이드(Dade) 카운티의 첫 여성 경찰로 부임하여,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경찰 업무를 보면서 갖가지 편견에 맞서야 했다. 그는 미니시리즈에 잠깐 등장하여 블랑코를 추적하는 앨 싱글턴(Al Singleton)과 결혼에 이르렀으며, 함께 내슈빌에 살고 있다. 하지만 미니시리즈의 내용과는 달리, 그가 다른 정보 부서로 이동한지 10여 년이 지난 후에 블랑코가 마약경찰국(DEA)의 요원에게 체포되었으며, 그는 마이애미 경찰서의 로비에서 블랑코의 실물을 먼 거리서 볼 수 있었다. 당시 작은 키에 늙고 지쳐 보이는 여성이 자신이 추적하던 악명높은 마약 보스였다는 사실에 다소 놀랐다고 토로하였다.